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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이집트의 사회 계급

by Dreaming Boss 2023. 9.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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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이집트는 나일강 하류와 수에즈 운하 일대에서 번성한 세계 4대 문명 중 하나다.
이집트의 피라미드형 사회 구조에서 신의 환생인 파라오를 제외하고 맨 꼭대기에 최상류층은 귀족과 사제 계급이 있었다. 엄격한 종교 사회였으나 정교분리가 불확실했던 고대 이집트는 파라오 본인이 대신관 직을 맡거나 귀족이 사제와 결혼하여 혈연관계를 맺거나 신관직을 맡는 일이 잦아 결과적으로 같은 계급이라고 보아도 무방했다.

 

신관은 다시 상위 신관과 하위 신관으로 나뉘었으며 상위 신관은 신상 가까운 곳에서 일할 수 있어서 평민들은 그들을 선지자라고 불렀다. 또한 신의 뜻을 해석하는 자들이 바로 상위 신관들이었기에 그 권위는 막강했다 하위 신관은 신에게 바칠 공물을 제작하거나 신상에 올릴 물을 나르는 등 신관 중 허드렛일하는 직급으로 가끔 오래 봉사한 하위 신관이 중위 신관을 거쳐 상위 신관이 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이들은 평생 일하지 않고 세습된 막대한 부를 누리는 불평등한 사회 구조였지만 특이하게도 노예나 평민들의 반란이 일어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당시 이집트가 엄격한 종교의 힘이 지배하는 사회였고 절대자 파라오와 신관의 말의 힘이 강력했기에 평민은 참고 견디면 내세에서는 영원한 삶을 살 수 있다는 달콤한 말에 현혹되었고 사실 다른 대안도 없었기에 이를 믿을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종교의 힘이 강력해 사후 세계와 신에 대한 믿음이 절대적이었던 이집트였기에 신관들의 가르침은 피지배 계층에게 강력하게 전달되었고 그 정점에는 호루스의 현신이자 살아있는 신인 파라오가 있었고 그 권위는 기타 서양 문명과 비교해도 독보적으로 강력했다.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평민인 농부들은 대부분 귀족이 소유한 토지에서 경작한 경작물의 대부분을 세금으로 바치는 동시에 파라오와 신을 위한 신전에서 진행하는 대규모 개수 공사나 운하 공사에 강제로 참여해야만 했다. 결국 사후 세계에 대한 신관들의 말을 믿으며 척박한 생활을 이어갔던 것이다. 그래도 전문적인 기술을 가진 장인이나 예술가 등은 농부 같은 평민보다 신분이나 생활이 나았으나 이들 역시 국가나 신전에 예속된 것은 마찬가지여서 창의적인 작품이 아니라 지시받은 대로 작품들을 만들거나 신과 귀족을 찬양하는 예술품을 만드는 일을 맡았다.

 

이런 절대적인 계급 사회에서는 필연적일지 모르나 고대 이집트에서도 역시 게임과 여흥이 많았는데 플루트나 하프 같은 초기적인 형태의 악기들이 등장했고 많은 인기를 끌었던 것으로 알려진 것으로 보아 음악도 상당히 대중적으로 즐긴 것으로 보인다. 또한 트럼펫 같은 파이프 악기들도 나타났고 아시아에서는 드럼, 탬버린 같은 타악기들도 유입되었다. 이 당시 음악 외에도 게임을 즐겼다고 하는데 현대에도 알려진 게임으로는 세네트 등이 있고 그 외에도 메헨이나 개와 자칼이라는 보드게임 들도 있었다. 이런 게임은 귀족, 평민 모두가 즐기는 여가 생활이었는데 남아있는 유물로 미뤄보면 제13왕조 시기의 파라오 아메넴헤트 4세의 무덤 그리고 평민들의 무덤에서도 동시에 세네트 보드게임 유물이 발견되었다.

아이들은 보드게임보다는 공놀이 같은 몸으로 즐기는 게임을 더 좋아했고 레슬링을 하기도 했다. 이에 비해 부유한 귀족 집안의 자제들은 돈이 많이 들고 노예들이 매우 필요한 사냥이나 낚시 같은 유흥을 즐겼다. 노예나 평민들이 즐길 수 있는 최대의 즐길 거리는 축제 기간으로 이때 신상이 신전 바깥으로 나와 퍼레이드했으며 이때가 노예나 평민이 신상을 직접 볼 수 있는 유일한 기회였다. 또한 이 당시 이집트인들은 신상을 직접 바라보면 모든 병이 낫는다고 믿었다고 한다.

또한 기록이나 유물로 미루어 고대 이집트 인들은 외모에 매우 관심이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매일매일 나일강에서 목욕했으며 그에 따라 동물 지방과 나무를 태운 재로 만든 세계 최초의 비누도 등장했다. 남성들은 청결을 위해 머리털을 포함해 온몸에 있는 털을 제모했으며 피부에 향유를 바르거나 향수를 뿌리기도 했다. 농부와 같은 평민들은 하얀 천으로 만든 단순하게 생긴 킬트나 로인클로스를 걸치고 다녔고 귀족 계급은 값비싼 염색 천으로 만든 옷을 두르고 보석으로 몸을 장식했다.

어린이들은 성인이 될 때까지 옷을 거의 입지 않았고 특히 성인이 되기 전까지는 머리 일부분에 머리카락을 남겨 놓고 싹 밀어 버린 후 이 남아 있는 머리카락을 길게 꽁지머리처럼 땋았다. 성년이 되어서야 이 꽁지머리를 잘라 버리고 성인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다만 지금에 비해 상대적으로 수명이 짧았던 당시에는 현대의 기준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대략 12세를 넘기면 성인으로 인정했다고 한다.

 

또한 특이하게도 당시 이집트에서는 의외로 남녀의 권리가 동등했다고 한다. 남녀의 경우 거의 비슷하다고 할 정도로 그 대우가 공평했으며 타 문명권들과는 다르게 여자에게도 계약을 체결하고 자기 재산을 사고팔고 결혼하거나 이혼할 권리와 재산을 상속받을 권리 등이 인정되었다. 결혼 후에도 아내에게 개별적으로 재산을 모을 수 있는 권리가 있었고 남편에게는 가족을 부양할 의무가 명확히 존재했다. 같은 시대의 그리스나 메소포타미아 문명이나 심지어 몇천 년 후의 로마 시대의 여성보다도 더 크게 향상된 권리를 보장받고 있었다. 클레오파트라 같은 여성 파라오들이 등장할 수 있었던 것도 이렇게 여성에게 남성과 동등한 권리와 권한을 부여했던 고대 이집트 문명의 분위기 덕분에 가능했다고 할 수 있다.

신의 환생인 파라오를 제외하면 귀족이나 평민 그리고 노예까지도 태생적으로는 평등하다고 여겼는데 덕분에 노예 출신이라도 전장에서 공을 세우는 경우 귀족이 된 경우도 있었고 반대로 귀족 출신이었지만 신의 노여움을 사면 노예 계급으로 떨어지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물론 노예들은 물건처럼 사유 재산으로 취급당했고 당연히 그 대우도 혹독했으나 고대 그리스처럼 돈을 모아 자기 주인으로부터 자유를 사들여 자유인이 될 수 있었고 의사에게 치료받을 권리도 인정되었다.

 

파라오를 중심으로 종교라는 강력한 매개체를 바탕으로 강제 결속된 사회였으며 굉장히 보수적이고 계급 간 차이가 확실한 수직적인 사회 구조였으나 그 경계를 넘나드는 경우도 있었으며 사람들은 음악과 놀이를 즐길 줄 알았고 특이한 점은 다른 문명에 비해 훨씬 앞서서 남녀의 권리가 평등하게 보장되는 사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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